테마 관련 저명인사 만남 깨끗한 지구를 이야기하다
김진만 다큐멘터리 PD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구 곳곳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스페인 갈라시아 지역의 국립공원에는 멸종됐던 곰이 무려 150년 만에 돌아왔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에는 60년 만에 물고기와 해파리들이 살아 숨 쉬기 시작했으며, 인도에서는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던 미세먼지가 사라지며 30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을 보게 됐다. 우리의 일상이 멈춘 곳에서 시작된 자연의 회복.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곰> 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해온 김진만 PD를 만났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신음하는 자연, 그 어디쯤을 향하고 있다.

글 박향아 사진 제공 김진만 PD

Q. <따뜻:한난> 독자분들에게 ‘김진만’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1996년 MBC 입사,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만들고 있고, 만들어 갈 김진만 PD입니다. 제 이름 앞에는 ‘환경 다큐멘터리 PD’라는 수식어가 주로 붙는데요. 사실 예능국에서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으로 시작했어요. 스스로 교양국 다큐팀으로 이직을 신청했어요. 예능이나 드라마가 대규모 비즈니스라면, 다큐는 소수가 만들어가는 작업인데요. 그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다 같이 소통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어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그렇게 25년째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Q. PD님의 이름 앞에 '다큐멘터리 PD'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2009년 제작된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시작점이 아니었나 싶어요. 원래 선배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작품이었는데, 어느 날 팀장님이 저에게 “진만아, 아마존 네가 갈래?”하는 거예요. 선배의 아내랑 딸이 위험하다며 아마존 행을 반대한 거죠. 그래서 아내도 딸도 없는 제가 가게 됐어요.(웃음) 처음에는 아마존 조에족의 삶을 통해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들의 삶에 녹아들수록 ‘환경’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어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는 태고의 모습을 간직해온 아마존, 오랜 세월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조에족의 삶을 파괴하고 있었거든요. 눈물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눈이 녹는다는 의미, 그리고 슬픔의 의미. 기후변화로 극지방의 눈이 녹으면서 가져온 환경의 변화는 누군가의 삶엔 눈물이 되죠.

Q. 아마존에서 조에족과 함께 보낸 이후 PD님의 삶에 변화가 생겼을것 같아요. 환경의 변화는 결국 인간 때문입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쌓은 댐으로 생태계가 단절되죠. 아마존에 묻힌 석유와 금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환경을 피폐하고 만들고, 그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원주민과 동식물을 향하게 됩니다. 아마존에서 얻은 결론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 때문이구나’라는 것이죠.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정보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죠.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데, 환경에 대한 정보는 여럿이 공유할수록 그 힘이 강해지는 신기한 분야입니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환경이 어떤 상태인지를 인지하고,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느낄 때, 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거죠.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욕심, 사명감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아마존이 제게 준 변화이자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이후 제작된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은 자연에 더욱 초점이 맞춰졌죠. 황제펭귄이 주인공이었죠?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전달한 메신저로 황제펭귄을 택한 건 ‘환경 감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나 텍스트가 아닌 영상과 스토리를 통해 보는 이의 공감과 변화를 끌어내야 하니까요. 남극에 다섯 종류의 펭귄이 서식하는데요, 황제펭귄을 처음 보는 순간, 마치 ‘조인성’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40kg에 달하는 크기에서 오는 압도감과 두 발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주는 귀여움… 보는 순간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 되죠. 새끼 펭귄들이 투덕거리며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얼어 죽은 새끼를 다음날까지 품고 있던 아빠 펭귄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요. 펭귄들의 삶에서 우리네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이겠죠.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펭귄들의 삶이 파괴되고 생명이 위협받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감은 변화를 위한 시작이니까요.

Q. 사람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와 달리, 자연 혹은 동식물이 주인공일때는 촬영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없잖아요. 일방적일 수 있는 촬영 환경 안에서 꼭 지키는 원칙이 있을까요? 모든 PD에게는 더 좋은 영상, 더 극적인 장면을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의 주인인 동물,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남극에서는 남극조약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촬영을 했어요. 펭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괜찮지만 우리가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는 건 안 됩니다. 알을 지키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는 50m까지, 새끼를 낳은 후에는 30m까지 접근할 수 있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심입니다. 펭귄이 알 낳는 장면을 촬영하려고 영하 60도의 추위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결정적인 순간 또 다른 펭귄이 카메라를 가려서 놓친 적이 있어요. 아쉽지만 그래도 또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죠. <남극의 눈물>은 1년 반 정도 촬영했어요. 그쯤 되면 일이 아니라 생활이 됩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시간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 어떤 평범한 사람이나 상황도 특별하게 보인답니다.

Q. 가장 가까이에서 환경의 변화를 바라보고 기록하다 보면, 환경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래스카 캄차카에서 다큐멘터리 <곰>을 촬영할 때였어요. 5년 전, 같은 장소에서 <생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촬영감독님이 “캄차카에 가면 동네 거리에 곰이 돌아다닌다”고 하시는 거예요. 바닷가에 있는 활주로도 정말 멋있다고 몇 번이나 자랑하셨죠. 잔뜩 기대하고 캄차카에 도착했는데, 바닷가의 활주로는 물에 잠겨 사라졌고 촬영 초반에는 곰 한 마리도 만날 수 없었어요.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환경이 바뀌고 곰들의 개체 수가 확연히 줄어든 거죠. 얼음이 얼어야 곰들이 북극으로 먹이를 구하러 가는데, 그러지 못하니 민가로 내려와 쓰레기를 뒤지는 거예요. 큰 곰들은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는데 새끼가 딸린 어미 곰은 새끼를 두고 혼자 갈 수가 없으니, 먹이를 구하다 함께 죽기도 합니다. 사냥할 수 없는 환경에서 더 약한 곰을 잡아먹는 비극도 발생하죠. 이 모든 일이 불과 5년 만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Q. 환경 다큐멘터리를 통해 PD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보시는 분들이 그 안에서 ‘공존’을 읽어내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우리 인간만이 아닙니다. 기후변화와 개발의 피해가 당장은 그곳의 동식물을 향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도 닥칠 위기입니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공존’이어야 하는 거죠. 곰과 어깨동무를 하고 펭귄을 만지는 공존이 아니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공존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조금 더디고 비효율적이라도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쓰레기도 줄여야 하고 플라스틱 소비도 줄여야 합니다. 1년에 7~8억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그중 3분의 1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덜 만들고, 필요한 것을 오래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탄소를 배출하고, 그것이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니까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1년 넘게 촬영했던 자연 다큐멘터리가 곧 방영됩니다. <아마존의 눈물> 내레이션을 맡았던 김남길씨와 함께한 작품인데, 사기꾼 동물들의 이야기예요. 생존하기 위해서 속고 속이는 동물들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따뜻:한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가요? 얼마 전 금강 지역에서 촬영을 했는데, 그렇게 깨끗한 강물을 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코로나19로 인간이 활동을 멈추자 지구가 숨을 쉬고 자연이 회복하기 시작한 거죠. 결국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반증이 아닐까요?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에너지를 이용해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기업이죠. 화석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할 경우 에너지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그 과정에서 분명 감내해야 하는 불편이 있을 거예요.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함께 논의하고 소통하면서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깨끗한 에너지로 만드는 따뜻한 온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김진만 PD의 추천 도서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다니엘 에버렛
일리노이주립대 학장 다니엘 에버렛이 아마존 오지의 부족민들과 생활하면서 겪은 이야기.

오래된 미래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서구세계와 다른 가치로 살아가는 라다크 마을 사람들을 통해 지구 전체를 생각하게 한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디 브라운
미국 서부 개척 당시,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주를 시키면서 사라진 부족민의 투쟁사를 담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