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더, 웃음 : 그림의 위로

바다는 하늘이 될 수 있고
하늘은 바다가 될 수 있다

Text. 이소영 작가

가위로 오려내고 붙인 마티스의 컷아웃 시리즈를 볼 때면 이 세상의 많은 풍경 중 내가 담고 싶은 것만 취하고 싶은 욕심마저 든다. 마티스의 작품은 도려낸 부분도 작품의 일부이며 바다는 하늘이 될 수 있고, 하늘은 바다가 될 수 있으며 물고기는 새가, 구름은 해파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앙리 마티스 <폴리네시아 하늘>

앙리 마티스 <폴리네시아 바다>

<폴리네시아 하늘>, <폴리네시아 바다> 작품을 보자. 하늘인 듯, 바다인 듯한 푸른 이미지들이 한가득이다. 2008년 시립미술관에서 <퐁피두센터 특별전>이 열렸을 때 나는 이 작품을 실제로 처음 마주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다시 파리의 퐁피두에 가서 이 작품을 보았다. 이 작품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우선 할 말을 잃는다. 작품의 크기가 워낙 커서 걸려있는 공간 자체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어서고,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행복한 혼란을 제공해서다. <폴리네시아 하늘>과 <폴리네시아 바다>는 짝꿍을 이루는 작품이다.

야수파의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1941년 십이지장암 수술을 한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그는 의사에게 진행하던 작품만 마무리할 수 있게 3~4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지만, 캔버스에 유화를 그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37년부터 관절염과 각종 지병이 있었고, 위하수증으로 인해 늘 쇠로 된 벨트를 차고 다녀야 했으며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티스에게 병마는 큰 장애가 아니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맹장염 수술 후 병상에 있을 때였다. 스물한 살의 마티스에게 그의 엄마는 미술도구를 건넸다. 이를 시작으로 마티스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색채의 마술사가 되었다. 마티스는 고정적인 색으로 대상을 표현하지 않고 대담한 색채로 ‘야수 같은 색감’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화풍을 주도했고, 회화 안에 다양한 문양을 끌어들임으로써 회화와 일러스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1943년 산속에 있는 별장으로 작업실을 옮긴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여행했던 타히티를 떠올렸다. 타히티의 파카라바섬에서 산호초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고, 수영하며 지낸 날들을 기억했고, 내면에 저장돼 있던 추억들이 캔버스에 되살아났다.

그는 태피스트리(Tapestry/여러 가지 색의 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를 위한 도안을 의뢰받자, 하늘과 바다를 주제로 한 이 연작을 시작했다. 이 도안들은 훗날 국립 태피스트리 공장에서 실제 태피스트리로 제작되었다.

그는 종이에 불투명 수채화 물감(과슈)을 칠해 색종이를 만든 후 그 종이들을 오리며 이미지를 창조해 냈다. ‘컷아웃’이라고 불리는 그의 콜라주 회화는 이렇게 출발했다. 그리고 몸이 회복해 다시 유화를 그리기 전까지 그는 종이 오리기 작업에 매진했다.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앙리 마티스 <Icarus(Jazz Book 시리즈)>

“나는 색에 바로 ‘그렸다’…그리기와 칠하기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티스는 자신의 작업실도 타히티의 바다와 하늘 풍경으로 바꿨다. 지저분한 얼룩을 가리기 위해 시작한 작업으로 그의 공간은 황금빛 햇살이 비친 풍성한 타히티의 자연으로 변했다. 마티스는 자기 작품 중 회화나 조각보다 ‘종이 오리기’를 통해 더 높은 밀도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작품 <Icarus(Jazz Book 시리즈)>는 마티스의 작품 중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이야기가 소재로 활용되었다. 미노타우로스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가두기 위해 자신들이 만든 미로 속에 갇히게 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부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을 엮어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아버지인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조언한다. 너무 높게 날면, 태양에 가까워져 날개가 타버리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에 가까워져 날개가 젖으니 조심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아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날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추락한다. 마티스는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자유롭게 하늘에 부유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다 떠나는 이카로스에게서 수술 후 하고 싶은 새로운 작업을 도전한 자기의 모습을 찾은 듯하다. 마티스 말년의 대작들이 이 시기에 태어난다. 마티스의 컷아웃 작품들을 보면 기존의 유화와는 다른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붓과 연필보다 가위로 오리는 형태가 훨씬 감각적이라고 생각했던 마티스가 보여주고자 한 율동감의 미학이다.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소통하는 그림연구소, 조이뮤지엄 대표. <그림은 위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처음 만나는 아트 컬렉팅>,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