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곁에 여행 가볼만한 국내 여행지를 추천합니다

바람이 주인인 산, 숲, 초원
- 강원도 평창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며 휴가철로 접어들었지만, 훌쩍 떠나고픈 마음과 달리 ‘안전한 여행지’ 선택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면 산과 숲, 초원이 터를 지키는 곳으로 떠나기를 권한다. 폭염도 굽이굽이 산길을 온전히 넘지 못하는 강원도 평창군으로 가보자.

드넓은 초원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진 한국의 알프스,
대관령 하늘목장
밤새 내린 비가 대지의 풋풋함을 깨우는 새벽에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해발 고도 832m의 대관령을 병풍처럼 두른 강원도 평창군. 드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대관령에는 이름만 들어도 정겹게 다가오는 대규모 목장이 세 곳 있다. 삼양목장과 양떼목장 그리고 하늘목장이다. 이 중 지금껏 인연이 닿지 않았던 하늘목장으로 향하기로 한다.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지나 2014년에야 일반에 개방한 탓에 다른 목장들과 비교해 방문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다. 더욱이 동과 서를 넘나드는 바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머무는 곳답게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까지 품어 이색적인 풍경도 덤으로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하늘목장을 방문하면 트랙터 마차를 타고 하늘마루 전망대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목장 구석구석을 친절히 안내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15분 남짓이 훌쩍 지나 정상에 도착한다. 백두대간 선자령 바로 아래에 조성된 하늘목장의 색다른 볼거리는 너른 초지 위에서 ‘휘잉휘잉’ 힘찬 소리를 내뿜는 풍력발전기이다. 산 너머 산이 끝없이 이어진 풍경도 압권이다.
전망대에서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고는 자연과 동물을 벗 삼으며 목장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너른풍경길’로 내려가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지가 나타나고, ‘가장자리숲길’로 들어서면 젖소가 친근하게 다가서며 인사를 건넨다. 그 길은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숲속 터널을 거쳐 양떼가 방목된 곳으로 연결된다. 그곳에서 양들의 숨결을 느끼며 먹이 주는 체험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오대산의 비경 속을 거니는 힐링 포인트,
월정사 전나무숲길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하늘목장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고 나니, 평창군에 펼쳐진 절경 속으로 더 들어가고 싶어졌다. 이런 이유로 찾아간 곳이 바로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가 1km 남짓 이어진 월정사이다.
속세와 가람의 경계인 듯 우뚝 서있는 일주문에 들어서니 전나무숲이 여행자의 길 안내를 자청한다. 자연의 숨결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신발을 벗은 채 걷는 사람도 여럿이다. 근심을 털고 거닐라 배려하는 숲길의 문구가 걸음의 무게를 가볍게 한다.
“고민을 비우니 행복이 차오릅니다.”
“이제 일상에도 행복할 겁니다.”
“자연을 호흡합니다. 나도 푸르러집니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선물합니다. 온전한 휴식을…”
숲길의 문구가 뜻밖의 선물이 되어 여행자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전한다.
숲길을 거닐며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질 즈음 오대산의 품에 안긴 월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월정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그 역사가 1,500년을 헤아린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잿더미가 되어, 지금은 국보 제48호 월정사팔각구층석탑만이 지난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월정사 경내를 거닌 후 시간이 허락하면 비로봉 곁에 있는 상원사도 들러보자. 월정사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8km의 산길을 올라야 하지만, 전쟁 중에도 목숨을 걸고 사찰을 지켜낸 한안스님의 숨결과 더불어 오대산 자락을 굽어보노라면 비포장 산길을 힘들게 올랐던 노고는 금세 잊게 된다.

소금 뿌린 듯 메밀꽃이 펼쳐지는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면
혹여 8월 말에서 9월 초에 평창을 여행한다면 메밀꽃이 한창인 봉평을 방문하자.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봉평에서 나고 자란 이효석 선생이 본 초가을 풍경은 소설 속에서 이처럼 묘사되어 있다. 시선이 향하는 곳 어디든 피어나는 하얀 메밀꽃이 ‘어여 들어와 꽃밭을 거닐어 보라’며 반갑게 손짓한다. 100년 전 작가가 본 봉평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흥정천의 섶다리를 건너면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사랑을 나눈 물레방아간이 나타나고,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이효석문학관이 나온다. 나귀를 타고 지났을 메밀밭의 좁은 길, 장돌뱅이가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봉평 장터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년 메밀꽃 필 무렵에 ‘효석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축제가 개최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소되었다. 하지만 봉평의 자연은 여전하다. 허생원이 당나귀에 의지해 힘겹게 넘었던 고갯길이 도로로 바뀌었으니 풍경을 감상하며 넘는 재미는 오히려 더 편해졌다. 또한, 이효석 생가 주변에 책박물관과 근대문학체험관, 달빛나귀 전망대 등 문학테마관광지가 조성되어 볼거리와 즐길거리까지 풍성해졌다. <메밀꽃 필 무렵>이 집필된 ‘평양 푸른집’ 앞에 서면 작가 이효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발 1,200m에 펼쳐진 ‘차박’ 성지,
청옥산 육백마지기
태백산맥의 중심을 지키는 평창군 곳곳을 여행했으니 최근 ‘차박(자동차에서 잠을 자며 머무르는 것)’의 성지로 떠오르는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대미를 장식하기로 한다.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군 정선읍 사이에 걸쳐 있는 청옥산(1,256m)은 곤드레나물과 함께 청옥이라는 산나물이 많이 자생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다. 이곳 정상에도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한여름에는 하얀 데이지꽃이 지천으로 피어 인생사진을 담으려는 여행객이 즐겨 찾는다. 다만, 오르는 길이 포장되지 않아 곳곳이 움푹 패여 차체가 낮은 자동차는 운행이 어렵다.
청옥산 정상 부근은 종자 600말을 뿌릴 수 있는 경작지(약 18만 평)가 있다고 하여 ‘육백마지기’라 부른다.

실제로 옛날부터 주민들이 보릿고개를 버티려 이곳에서 온갖 산나물을 캐어 연명했고, 차츰 농지를 만들어 넓혀 나갔다. 지금도 비포장도로를 오르다 보면 넓은 밭을 가득 메운 고랭지 배추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찾아가기 어려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아름다우면서도 이색적인 풍경 덕분이다. 낮에는 하얀색 풍력발전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곳에서 인생사진을 담고, 어둠이 깃들면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별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이기에 봄부터 가을까지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Travle Tip

당일치기 : 대관령 하늘목장 ▶ 월정사 & 전나무숲길 ▶ 상원사 ▶ 방아다리약수
1박2일 :
[1일차] 대관령 하늘목장 ▶ 월정사 & 전나무숲길 ▶ 상원사
[2일차] 봉평 이효석 문학관 ▶ 메밀꽃밭 ▶흥정천 섶다리 ▶봉평장 ▶청옥산 육백마지기

숙박 : 평창군은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지역으로 알펜시아 리조트, 휘닉스파크, 용평리조트를 비롯해 다양한 숙박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자연을 품은 여행지가 많아 펜션도 여럿이다. 대관령, 월정사, 봉평, 진부 등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얻을 수 있는 관광지도를 참고하면 해당 지역의 숙박시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맛집 : 평창에서 먹는 식사 중 한 끼는 지역의 특산물인 황태, 메밀, 송어로 만든 음식을 맛보자. 대관령은 황태, 봉평은 메밀, 미탄면은 송어가 제격이다. 황태는 대관령면 소재지인 횡계리에 전문 음식점이 여럿이고, 메밀은 끝자리 2일과 7일에 장이 서는 봉평장, 송어는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미탄면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기화리 양어장 횟집(033-332-6277)을 추천한다.

글/사진 김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