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필름 환경을 주제로 한 영화를 추천합니다

1990년대 우리를 강타한
세계화의 파도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2020
삼진그룹이라는 가상의 회사에서 누군가에 의해 벌어진 상수원 페놀 방류. 그 장본인을 추적하는 세 여사원(고아성, 이솜, 박혜수 분)의 종횡무진 맹활약을 코믹스러우면서도 무게감 있게 다룬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영화의 줄거리는 실제 사건이었던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코로나19 시국임에도 누적관객수 약 150여만 명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풍운의 1990년대, 그때를 아십니까? 1990년대는 실로 풍운의 시대였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고, 대 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1980년대를 지나 이제는 우리나라도 뭔가 ‘잘 사는 민주국가’가 되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빈 티와 촌티를 벗고, 세계무대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세계화 의 파도를 처음으로 접했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당시 국민들은 아직 순진했다.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를 체감하지 못했다. 단순히 다들 영어 좀 잘 하고, 해외여행 많이 나가 고, 외제 물건 좀 자유롭게 사서 쓰면 그만인 줄 알았다.
물론 세계화는 그렇게 편안하고 소비적인 개념이 결코 아니었다. 그동 안 보호무역이라는 온실 속에서 고속 성장을 이어왔던 대한민국이 결 국 그 온실을 벗어나 맨몸으로 세계 각국과 경쟁하게 되었다는 것이 세 계화의 본질이었다. “서울에서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속담처럼 세계무대의 룰은 아직 ‘시골뜨기’던 우리에게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이 영화의 큰 줄거리에서도 그런 부분은 속속들이 녹아나 있다. 영화 속 페놀 방류를 지시한 최종책임자는 다름 아닌 신임 외국인 사장 빌리 박(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이었고, 그 목적은 회사의 주가를 폭락, 회사 를 헐값에 차지하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물론 주인공들은 갖은 고생 끝 에 그 음모를 막고, 회사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영화 속 시점에 서 불과 2년이 지난 1997년에 IMF 구제금융이라는 더욱 큰 파도가 대 한민국을 통째로 뒤흔들었다는 것, 30대 이상의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 가 없을 것이다. 추억의 패션을 한 귀여운 여주인공들의 활약 이면에는 그러한 세계화의 덫이 진하게 느껴진다.

환경문제도 세계화의 그림자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세계화의 덫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된 다. 바로 환경문제의 세계화이다. 페놀은 대표적인 독성 물질로, 부식 성이 매우 강하다. 일반적으로 습진, 염증 등 피부 손상과 출혈을 일으 키고, 심하게 중독될 경우에는 폐경색과 농성기관지염, 괴사까지 이르 게 한다. 과연 삼진그룹의 공장이 미국 대도시 근처에 있었다면 빌리 박 사장이 이런 무리수까지 두었을까?
사실 환경문제는 그 속성상 이미 글로벌한 이슈이다. 자연은 국경을 알 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는 지구의 대기와 해 양 속 순환계를 타고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이 밝혀진 오 늘날에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세계화가 진전된 지금,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 등에도 그 영향이 확산되고 있다. 선 진국의 환경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배출된 쓰레기의 분류 와 재활용은 가난한 나라에 부담을 지우는 일이 많다.

그리고 그 나라 국민들은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그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뿐이랴. 그 외에도 선진국에 필요는 하지만 그 나라 영토에 세워지는 것은 아무도 원치 않는 많은 오염 시설들이 낮은 환경보호 규제와 저렴 한 인건비를 찾아 개발도상국 등으로 떠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이 자 국의 이익을 위해 파리 기후 협약을 탈퇴한 것은 그런 부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우리 인류는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자연을 잘못 건드린 업보다. 더욱 큰 보복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하나뿐인 이 지구는 후손에게서 빌려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구는 인위적인 국경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때문에 환경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전 세계인의 의무다. 온 인류가 힘을 합쳐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화의 그림자가 아닌, 양 지를 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이동훈(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