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난 : 마음 채움

나 자신을 뜨겁게
사랑해보자

Text. 나태주(시인) Illust. 다나

나는 언제나 삶의 결핍에 주목한다. 결핍이 낳는 것이 그리움이고 그리움이 낳는 것이 사랑이다. 왜 겨울에 난로를 놓고 여름에 냉풍기를 트는가? 결핍 때문이다. 결핍은 우리에게 불편함과 불행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 너머엔 또 다른 세상을 선물하기도 한다.

오늘의 나를 길러준 것은 무엇이었나? 결핍이다. 오래도록 깊은 결핍의 날들. 그런 마이너의 날들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오늘의 나로 변화시켜 주었다. 그런 점에서 결핍이야말로 또 다른 삶의 에너지라 할 수 있겠다.

해마다 1월이 되면 나는 외부 일정을 잡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면서 책을 쓴다. 쓸만한 책이 없으면 그동안 미루었던 원고를 정리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런다. 그러니까 해마다 1월은 내가 진정한 나로 돌아가는 계절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시기이다.

제법 오래전의 일이다. 그 1월에 나는 두문불출하고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라야 별난 것이 아니다. 복사지에 그림 연필로 그리는 매우 단순한 그림, 소묘다. 주로 꽃이나 풀을 그리고 풍경을 그린다.

그런데 주변에 꽃이나 풀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찌하나? 궁리 끝에 나는 컴퓨터를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사진 파일을 살폈다. 더러는 꽃 피는 계절에 찍어둔 꽃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니 더욱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컴퓨터를 지켜보며 꽃 그림을 그리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다. 어째서 눈이 내려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고 천지에 꽃이며 풀들이 사라진 계절에 풀꽃 그림을 문득 그려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하다. 오히려 꽃이나 풀들이 없고 날씨까지 춥고 그래서 바로 그런 결핍 요인들이 나로 하여금 꽃과 풀들을 그리워하게 했고 또 풀꽃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핍이 또 다른 에너지란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이들에게 결핍 상황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이 많은데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은 때가 청춘 시절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더욱더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젊은이들에게 나같이 나이 든 사람이 무슨 말을 해줄까? 앞날에 좋은 것들이 있으니 참고 기다리며 무작정 앞으로 직진하라고만 할까?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는 일. 나는 그들에게 한 가지 대안을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해보라고.

그것이 밥벌이와 무관한 것이라도 좋을 것이다. 우리 앞엔 대체로 두 가지의 일이 있다. 내가 잘하는 일이 그 하나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다시 하나다. 얼핏 사람들은 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그쪽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잘하는 일은 자신의 관심만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도 관계가 있다. 잘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남들 앞에서 늘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또 남들 앞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잘하는 일은 부담감을 주고 때로는 자존감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고, 자칫 실수나 모자란 점이 있다 해도 다시금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준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고 만족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나만 해도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시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디까지나 시를 잘 쓰고 싶은 사람이다. 시를 조금 서툴게 썼다 해도 속상한 일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잘 써보고 싶은 소망을 준다. 그만큼 좋아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우리에게 에너지를 준다.

바야흐로 추운 겨울철이다. 날씨가 춥기에 우리의 가슴은 더욱 따뜻해지고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미래의 우리 자신의 삶이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봄일 것이다. 인생의 봄, 자연의 봄을 가슴에 품고 나 자신을 뜨겁게 사랑해 보자.

나태주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이 되어 50년 넘게 시를 쓰면서 살았다. 동시에 43년간 초등학교 교원으로도 살았다.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낸 이래, 150여 권의 문학 서적을 출간했고 2007년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공주문화원장과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4년부터는 공주시의 도움으로 ‘나태주풀꽃문학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