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더, 웃음 : 그림의 위로

인생 만세
viva la vida

프리다 칼로

Text. 이소영 작가

“만약 사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자꾸 그 그림을 ‘초현실’ 또는 ‘비현실’이라고 말하면 기분이 어떨까?”, “만약 큰 사고를 당해 온몸이 부서져 움직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모두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생각할 때 마다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화가가 있지만 프리다 칼로 만큼 큰 사고가 있었던 화가는 드물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표현대로 너무 부서질 대로 부서져서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기가 무색하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가시목걸이와 벌새가 있는 자화상>

프리다 칼로는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인해 한 쪽 다리가 자라지 않아 남들보다 훨씬 얇은 다리로 살아야 했고 ‘나무 다리 프리다 칼로’라고 놀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리다 칼로의 삶에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난다. 18살이던 1925년 9월 통학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프리다 칼로가 탄 버스와 기차가 부딪히면서 강철봉이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 나와 기약 없는 큰 수술을 한다. 수술하는 내내 의사들은 가족에게 그녀는 이제 다시 걸을 수도 없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게 프리다 칼로는 온몸이 부서진 채로 평생을 살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프리다 칼로가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 동안 새로 찾은 활동이 바로 미술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미술 재료를 주고, 천장에 거울을 부착해주었다.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서 꾸준히 자신의 얼굴을 그렸고, 평생토록 자화상에 대한 깊은 탐구는 지속되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 중 자화상이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양이 많다(프리다 칼로가 남긴 200여 점의 작품 중 143점이 회화였고, 그 중 55점이 자화상이었다). 실제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모습을 늘 무표정으로 그렸는데 큰 사고를 당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한다.

프리다 칼로가 세상에 알려진 건 멕시코의 국민 화가이자 대단한 벽화 화가로 추앙받았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 때문이라고 말해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슴 아픈 기억>

두 사람은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미술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사랑했고 결혼한다. 하지만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외도를 하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결국 이혼한다. 당시 프리다 칼로가 겪은 심리적 아픔은 본인의 몸을 관통하는 위험하고도 투박한 긴 막대와 뻥 뚫린 몸으로 <가슴 아픈 기억>이라는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피를 흘린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심장이 프리다 칼로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프리다 칼로의 이런 작품을 보고 ‘초현실적이다’라고 했지만 그녀는 모든 그림에 자신의 상처를 투영해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두 명의 프리다>라는 작품에서는 제목 그대로 두 명의 프리다가 무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프리다 칼로는 외도가 잦았던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을 한 시점이었다. 사고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잦은 유산으로 인해 힘들었던 상황에 디에고 리베라와의 이혼까지 진행했으니 프리다 칼로는 심신이 무척 피폐해져 있었다. 좌측의 프리다 칼로는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어 피가 문양처럼 수놓아진 드레스를 입고 있다. 우측의 또 다른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의상인 테후아나를 입고 한 손에 작은 디에고 리베라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자신에게는 예술적 영웅이기도 했던 디에고 리베라를 떠나 보내야 했던 마음과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

하지만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에게 다시 결혼하자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남들은 이해 못할 이 재결합을 받아들인다. 즉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와 두 번 결혼한 셈이다. 이런 스토리로 인해 세상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나 연극으로도 여러 번 창작했다. 삶의 말년에 프리다 칼로는 정물화를 유독 많이 그렸다. 프리다 칼로가 그린 정물화를 볼 때마다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메시지를 느낀다. 그녀의 대표작 수박 정물화에 적힌 메시지에서도 그렇다.

<두 명의 프리다>

<인생이여, 만세>

인생 만세 viva la vida

프리다 칼로는 <인생이여, 만세>를 그리고 8일 뒤에 세상을 떠난다. 짧지만 강렬했고 슬프지만 찬란했던 47년의 인생이었다. 훗날 영국의 록 밴드 ‘콜드 플레이’는 역경에 맞서 주체적인 삶을 살다간 프리다 칼로의 삶에 감동받아 동명의 노래를 발표한다. 그리고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인생에서 자꾸 지는 기분이 들 때 이 노래를 들으세요.”

나 역시 살면서 자꾸 질 것 같을 때마다 프리다 칼로의 수박 정물화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도 감사한 우리의 인생 만세!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소통하는 그림연구소, 조이뮤지엄 대표. <그림은 위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처음 만나는 아트 컬렉팅>,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