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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공유경제, 뜨는 구독경제
- 공유에서 구독으로 바뀌게 된 몇 가지 이유들
상품을 ‘소유’의 방식으로 소비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소유가 ‘공유’로 바뀌더니, 이제는 ‘구독’하는 방식의 소비가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시대다.

구독경제 시대, 우리의 일상을 바꾸다 사실 구독은 과거 신문이나 잡지를 보던 방식 중 하나였다. 그러니 이른바 ‘구독경제’라 이름 붙여진 소비방식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독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현재의 구독경제는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네 일상 곳곳에 들어와 있다.
월정액을 내면 콘텐츠를 무한정 이용할 수 있는 ‘멜론’이나 ‘넷플릭스’ 같은 디지털 기반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가장 단적인 사례다. 이전에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콘텐츠는 하나의 상품으로 구매해야 이용할 수 있었다. CD로 듣던 음악이 음원으로 대체되면서도 한동안 우리는 음원을 앨범 형태로 구매해 듣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월정액을 내고 다양한 음원들을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구독 방식의 소비로 바뀌었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DVD 형태의 상품으로 사서 보던 영상 콘텐츠들도 이제는 월정액을 내고 콘텐츠를 무한정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구독경제는 이제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속적인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셔츠나 양말·생리대·면도날 같은 생필품은 물론이고, 자동차·가전제품 같이 소유의 개념으로만 생각했던 상품도 구독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애완견을 위한 사료나 간식,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등 다양한 일상 소비 영역 속으로 구독경제는 확대되어 들어오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구독경제 개념을 활용한 다양한 회원제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월 9.99달러를 내면 뉴욕 맨해튼에 가입한 주점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씩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후치(Hooch)’ 같은 회원제 서비스 앱이나 면도날을 정기 배송하는 ‘달러셰이브클럽’ 같은 색다른 서비스들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서비스 방식은 소비문화 자체를 변화시킴으로써 기존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달러셰이브클럽은 320만 명의 유료회원을 확보하면서 질레트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20%나 떨어뜨렸다고 한다.

공유경제에서 구독경제로 바뀌고 있는 이유 구독경제가 우리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그것이 소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비란 ‘상품 구매’의 개념이 전제된 것이었다. 하지만 구독경제는 상품 구매가 아닌 ‘서비스 사용’의 개념으로 소비 형태를 변화시킨다. 멜론이나 넷플릭스 같은 디지털 콘텐츠 소비는 물론이고, 정기구독으로 배송 받는 면도날이나 생리대 같은 물품 소비 역시 구매보다는 서비스의 의미가 더 중요해진다. 거기에는 상품만이 아닌 배송이나 고객의 의견을 수용하는 소통 같은 ‘서비스’의 개념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던 건 구독경제가 아니라 공유경제였다. 개인이 소유한 집을 공유하는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나 차량 공유 플랫폼 ‘우버’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지목된 공유경제였다. 당시 공유경제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인류의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필연 적인 선택으로까지 회자되었다. 즉, 잉여 생산품들이 포화상태가 된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상품 구매가 경제를 이어갈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재고없이 경제를 이어갈 수 있는 모델이 공유경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공유경제는 예상치 못한 한계들을 드러냈다.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공유 경제모델이 이른바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중개플랫폼의 관점으로 들여다보자 공유경제는 ‘공유를 통해 효율적인 상품의 협력소비’라는 관점에서 ‘중개수수료를 받아가는 플랫폼 중심의 경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들 플랫폼들이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을 참여시켜 새롭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짐으로써 기존 산업과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는 기존 숙박산업의 반발을 일으켰고, 우버는 기존 택시들과 마찰을 일으켰던 것.

대안으로 등장한 구독경제는 이런 문제 자체를 일으키지 않는다. 즉, 중개플랫폼이 아니라 기존 산업의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에서 구독 개념으로 바꿔 서비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독경제는 중개 없이 공급자와 소비자가 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를 만족시켰다.
공유경제나 구독경제 모두 소유 방식의 소비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방식이지만 이런 차이로 인해 희비쌍곡선을 그리게 됐다. 공유경제가 ‘지는 별’이라면 구독경제는 ‘뜨는 별’이 됐다. 구독경제 시대에는 상품의 개념도 바뀌었다. 그저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구독경제 성장 배경과 전망 이처럼 구독경제가 급성장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디지털 환경 덕분이다. 대용량화된 데이터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로 들어서면서, 구독경제는 좀 더 시스템적으로 운용이 가능해졌고, 더 많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또한 축적된 데이터들을 활용한 ‘개인화’된 양방향 서비스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좀 더 쉽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구독경제는 이처럼 소비자는 물론이고 기업에게도 이익을 주는 경제모델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들이 회원제 서비스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통해 더 좋은 서비스를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 운용되는 구독경제는 점점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지금의 소비자들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다. 따라서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며 개인 취향에 특히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바로 이 구독경제를 주도하는 강력한 소비자로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들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고 디지털 정보검색을 통한 ‘가성비’, ‘가심비’ 소비를 전면에서 이끄는 세대들로 좋은 서비스에 대한 구독을 통해 소비를 전면에서 이끌고 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구독경제 성장의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소비의 증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비대면 소비를 경험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구독경제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영화관을 가기보다 넷플릭스를 보고, 시장을 가기보다 모바일 쇼핑을 하면서 지속적인 소비가 이뤄지는 것들을 구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왔을 때 우리는 어쩌면 지금 경험한 비대면 소비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도래한 구독경제의 시대는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그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글 정덕현(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