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스마트에너지도시 소개 시민이 만들어가는
스마트시티 플랫폼, 암스테르담

개방을 통한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화두다. 이러한 개방형 혁신에 기반한 시민 중심의 바텀업(Bottom up) 전략으로 도시의 스마트화를 발 빠르게 진행하면서 글로벌 스마트시티의 반열에 오른 도시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항구도시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정부는 주도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시민과 스타트업 등 민간기업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발전시켜 실용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암스테르담이 스스로를 ‘스마트시티 플랫폼’이라 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양철승(과학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암스테르담 시청, solaroad.nl, TU Delft, AMS INSTITUTE


스마트시티 3.0의 선구자 암스테르담의 스마트시티 진화는 지난 2006년 ‘지속가능 발전 도시계획’ 수립 후 2009년 암스테르담 경제위원회 산하 ‘암스테르담 스마트시티(ASC)’의 출범으로 본격화됐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체계적 전략과 목표를 가진 가장 빠른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론칭한 것이다.
ASC의 최대 특징은 전문가나 대기업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춘 바텀업 방식의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현재와 미래의 과제는 민관 협력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후 지금까지 민간의 주도로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 및 제품을 제안해 현실화하는 시민참여형 스마트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당시에만 해도 이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스마트시티는 컴퓨터, 센서 등의 기술에 주목했다. 그래서 첨단 기술과 인프라를 어떻게 도시에 적용할지가 논의의 핵심이었지만, 2010년대의 스마트시티 2.0 시대에는 교통난, 공해, 에너지,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해법으로써 스마트시티를 바라봤다. 그리고 2020년대 들어서야 민간(시민)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기술을 개발·보급하는 스마트시티 3.0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시민친화적 스마트시티 3.0을 표방한 암스테르담이 새삼 재평가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도시 현재 ASC는 순환 도시, 에너지, 모빌리티, 시민과 생활, 디지털 도시, 스마트시티 아카데미(교육)라는 6개 주제 아래 민간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300여 개의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거주민과 민간기업, 연구기관 관계자가 개인으로 ASC에 계정을 만든 뒤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을 모색한다. 24시간 열려 있는 시민 의견 수렴의 창구이자 실증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으는 중재자 역할도 수행한다. 올 9월까지 8,000명 이상이 회원으로 참여 중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ASC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EU가 자금을 지원하는 ‘시티젠(City-zen)’을 들 수 있다. 시티젠의 핵심은 태양광 발전과 스마트 그리드에 기반한 가상발전소(VPP)다. 1만 가구의 주택 지붕에 태양전지를 설치하고, 이를 스마트 그리드로 묶어 하나의 발전소로 운영하는 개념이다. 각 가정이 생산 및 사용하고 남은 전력은 주택 내 배터리와 공동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보관해 추후 사용하거나 다른 지역에 공급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주거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주택개조와 폐열발전 및 지하수 냉각시스템을 통한 냉난방비 절감으로 각각 연간 3,000톤, 4,5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저감효과를 거두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이 같은 시티젠을 앞세워 오는 2025년까지 199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감소하고,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이다.


특명! 교통체증을 해결하라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민의 최대 스트레스 유발요인 중 하나는 교통체증일 것이다. 이에 ASC에서도 많은 시민들의 요청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모빌리티의 혁신을 이끌 다수의 프로젝트가 실증·상용화되고 있다.
그중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로 ‘그린 웨이브(Green Wave)’와 ‘로보트(Roboat)’를 들 수 있다.
먼저 그린 웨이브는 교통량에 맞춰 신호체계를 제어함으로써 신호대기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이다. 차량이 교차로에 다가오면 접근 속도에 맞춰 녹색 신호가 알아서 켜지고 멈춤 없는 통과를 지원한다. 일례로 교차로의 한쪽에 100대가 접근 중이고, 다른 쪽에는 접근 차량이 없다면 100대가 모두 통과할 때까지 해당 방향의 신호등이 녹색을 유지한다. 한쪽은 1대, 반대쪽은 20대라면 1대가 교차로를 통과하는 즉시 반대쪽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뀐다. 시간이 아닌 통행량을 기준으로 신호등을 운영하는 것이다. 과연 누군가 지켜보며 수동조작이라도 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교차로 인근에 부착된 카메라들의 영상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최적의 신호체계를 결정한다. 암스테르담에 따르면 이 시스템 도입 후 교통체증이 20% 가까이 줄었다.
로보트는 명칭에서 예상되듯 자율주행 로봇 보트다. 운하가 많은 암스테르담의 특성을 살려 운하의 교통분담률을 높이기 위해 네덜란드 AMS 연구소와 MIT가 지난 2017년 시작한 5개년 프로젝트다. 4분의 1, 2분의 1 프로토타입 실증을 거쳐 지난해 말부터 실물 크기의 시제품이 운용되고 있다. AMS 연구소는 로보트가 상용화되면 출퇴근 시민, 도시 쓰레기, 우편·택배 등의 수송을 맡겨 도로교통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로 인한 환경적 이익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자유분방의 대명사에서 스마트시티 롤모델로 시민과 민간기업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 덕분에 암스테르담에서는 여타 스마트시티와는 차별화된 창의적인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변 속에 비료의 핵심 영양소인 인(P)과 질소(N)가 포함돼 있음에 착안해 소변을 작물비료와 물로 재활용하는 ‘신데렐라 프로젝트’, 강우량 증가로 인한 침수피해에 맞서고자 빗물을 정수한 물로 만든 맥주 ‘천상의 물(Hemelswater)’이 그 실례다. 신재생에너지 설치 공간 부족을 극복할 태양전지 자전거도로 ‘솔라로드’, 양조장의 곡물 폐기물로 만든 빵 ‘브라우 브루드(BrouwBrood)’, 공기 거품으로 수로 속 플라스틱 쓰레기를 선별·제거하는 ‘버블 배리어(Bubble Barrier)’도 독창적 프로젝트로 꼽힌다.
지난 12년간 이 같은 도전들이 모여 암스테르담 시민들의 삶은 점차 스마트하고, 환경친화적으로 변모했다. 모빌리티 분야만 봐도 도시 어디서나 친환경 전기차와 전기자전거 공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첨단 정보통신기술(ICT)로 교통의 흐름은 한층 원활해졌다. 올 9월에는 버스·트램·지하철·열차·택시 등 대중교통과 공유 모빌리티를 하나의 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어메이즈(Amaze)’가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동성결혼, 마리화나, 성매매가 합법인 자유분방한 기존의 도시 이미지는 암스테르담은 스마트시티 3.0의 롤모델로 환골탈태했다. 어쩌면 암스테르담이 보여주는 가르침은 뚜렷하다. 진정한 탄소중립 도시, 스마트 에너지 시티로 나아가려 한다면 기술과 도시의 앞자리에 ‘사람’이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