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관련 저명인사 만남 성장을 지켜보는 일
산악인 엄홍길 대장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반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 지난 22년간 수많은 도전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서른여덟 번의 도전 끝에 그는 산을 내려와 이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산 아래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또 다른 도전. 이 산이 나에게 베풀어 이제껏 살게 한 것처럼, 그 풍요로움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글 박향아 사진 김정호

Q. 지면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산악인 엄홍길입니다. 올 한해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듣지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많이 혼란스러웠죠. 모두가 잘 견디고 버텨준 덕분에 이제는 ‘위드 코로나’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조금은 홀가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한 해였지만,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 잘 마무리하시고, 2022년도에는 모두가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Q.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요? 지난 2020년 1월 25일, 네팔에서 17번째 학교 건축물 준공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당분간은 네팔에 못 갈 테니, 국내에 머물면서 여유를 가지고 몸과 마음의 쉼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느라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 그 인연을 통해서 모든 일이 이뤄지거든요. 우리가 하는 일을 알리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응원의 마음과 후원을 받고... 그렇게 함께 이뤄나가는 일이죠.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고 다시 네팔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Q. 그럼 요즘은 산에 오르는 일을 잠시 내려놓으신 건가요? 더 높이 오르기 위한 등반은 하지 않지만, 함께 산에 오르는 등산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강북구에 13개 중학교가 있어요. 각 학교로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 5명씩을 추천받아서 매달 2번씩 근교의 산에 오르고 있어요. 흔히들 ‘중2병’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아이들과 1년 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산을 만나러 가는 거죠. 첫 산행 때와 마지막 산행 때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훌쩍 성장해 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지막 산행을 마친 후 수료증을 주고, 가장 많이 성장한 학생을 선발해서 히말라야에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벌써 9년째 해오고 있는 일인데,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서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은 제게도 큰 기쁨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16좌를 등정한 후, 네팔의 오지 마을에 어린이를 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 일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히말라야가 내게 준 숙제입니다. 16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세운 후, 그 목표에 다가갈수록 간절함이 더해갔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큼 목표를 향한 염원도 커졌죠. 산을 오르며 기도했습니다. ‘저의 간절한 꿈을 이뤄주시되, 저를 산에 잡아두지 마시고 다시 살려서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히말라야 신이 베풀어주신 도움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나누면서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마침내 16좌 등정에 성공했고, 한동안은 꿈을 이룬 사실에 도취해 하늘에 붕 떠 있는 채 지냈습니다. 어느 순간 두 다리가 땅에 닿으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히말라야와 약속을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산의 정상만을 향하던 시선이 산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게 됐습니다. 히말라야의 산을 무수히 오르는 동안 계속해서 지났던 곳인데, 이제야 마을이 보이고,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너무 맑고 순수한데,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 척박했죠. 그래서 네팔의 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오지 마을에 16개의 학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히말라야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Q. 고산지대에 학교를 세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건축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시도도 못 했을 거예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모르니까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일단 건축을 위한 물자를 팡보체까지 수송하려면, 카트만두 경비행장까지 이동한 후, 야크나 사람이 짊어지고 3일을 걸어야 합니다. 물자 수송비용과 기간도 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작업 중 물자 하나가 부족하면, 수송하는 데 꼬박 1주일이 더 걸립니다. 춥고 긴 겨울,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우기 등 혹독한 자연환경도 큰 걸림돌이었죠.

Q.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도전을 이어갔고, 2020년 17번째 학교가 개교를 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지혜’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히말라야 마을들은 고도가 높아서 겨울이 길고 춥습니다. 교실마다 난방시설을 설치하기에는 건축비가 부족했고요. 그래서 벽과 천장 전체에 단열재를 두툼하게 채워 넣기로 했습니다. 해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큰 창을 내고요. 그랬더니 한겨울에도 교실 안에만 들어가면 훈훈하더라고요. 인도 접경 지역의 경우는 평야에 학교를 짓다 보니, 우기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에 배수 시설이 되어 있지 않으니 비가 오면 물이 고이면서 건물이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했죠. 그래서 바닥에서 50센트 정도 기초 공사를 단단하게 해놓고, 그 위에 학교를 짓기로 했습니다. 비가 오고 물이 고여도 건물에는 영향이 없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에요.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간 거죠. 아이들에게 더 좋은 학교를 선물하겠다는 간절함이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팡보체 휴먼스쿨을 시작으로 드디어 16차 휴먼스쿨의 첫 삽을 떴는데요. 15년 전 16개의 학교를 짓겠다는 약속을 드디어 지키게 됐을 때의 기분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과연 16개의 학교를 다 세울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산을 오르듯 차근차근 올라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감사하게도 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후원과 응원을 보내주셨고, 2018년에 목표로 했던 16번째 학교의 건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6번째 프로젝트는 네팔 카트만두 외곽에 초중고등학교, 도서관, 회관, 1,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체육관까지 갖춘 교육 타운 건설을 목표로 진행 중입니다. 현재 초·중·고등학교까지는 후원자가 함께하고 있고, 도서관, 체육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16번째 학교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힘들었지만,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더라고요. 여전히 학교가 필요한 지역이 많이 있고, 그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꿈을 키워나갈 학교는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17번째 학교 건축을 시작했고, 작년에 16번째 학교보다 먼저 개교를 했습니다.

Q.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도전을 이어갔고, 2020년 17번째 학교가 개교를 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지혜’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히말라야 마을들은 고도가 높아서 겨울이 길고 춥습니다. 교실마다 난방시설을 설치하기에는 건축비가 부족했고요. 그래서 벽과 천장 전체에 단열재를 두툼하게 채워 넣기로 했습니다. 해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큰 창을 냈고요. 그랬더니 한겨울에도 교실 안에만 들어가면 훈훈하더라고요. 인도 접경 지역의 경우 평야에 학교를 짓다 보니, 우기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에 배수 시설이 되어 있지 않으니 비가 오면 물이 고이면서 건물이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했죠. 그래서 바닥에서 50cm 정도 기초 공사를 단단하게 해놓고, 그 위에 학교를 짓기로 했습니다. 비가 오고 물이 고여도 건물에는 영향이 없도록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에요.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간 거죠. 아이들에게 더 좋은 학교를 선물하겠다는 간절함이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학교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현재 네팔 지역의 16개 학교에서 4,700여 명의 학생들이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휴먼스쿨을 졸업하고 더 큰 꿈을 위해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는데요. 수도인 카트만두의 대학에 다니려면 학비와 생활비까지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대학 진학 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어요. 히말라야 등반 중 유명을 달리한 셰르파들의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도 꾸준히 전달하고 있고요. 아이들에게 꿈이 생기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저 역시 가슴이 뜁니다. 그 아이들의 꿈이 결국 제 꿈이니까요.

Q. 마지막으로, 늘 새롭게 도전하고 성장하는 한국지역난방공사 임직원 여러분에게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자승최강’, 저의 좌우명입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는 의미죠. 8,000m의 높은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변화무쌍한 자연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그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 자신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정상에 오를 수 있었죠. 모든 도전에는 어려움과 두려움이 따릅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실력을 쌓는 것이 우선이고, 그다음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노력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세요. 설령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 성장할 테고, 이를 토대로 다음 도전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