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더, 웃음 : 그림의 위로

황금색을 사랑한 ‘클림트’가 그렸던
여인의 초상

Text. 이소영

1900년대 초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살았던 여성이었다면, 한 번쯤 반드시 초상화를 부탁해 보고 싶은 화가가 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다. 클림트는 1900년대에 여성의 초상화를 가장 아름답게 그렸던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초상화에 세기의 문에 서 있는 여인들의 고혹한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클림트가 그린 여성의 초상화가 모두 비슷한 스타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그린 초상화에도 변천사가 있었다. 클림트가 그린 시기별 대표 초상화를 만나보고 클림트의 초상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초상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미래를 내다본 화가

클림트는 1898년 처음으로 소냐 크닙스를 그린다. 소냐 크닙스는 제철업과 금융업을 하는 집안의 여성이었던지라 남편인 안토니오와 함께 빈에서 아트 컬렉터로서도 활동했고, 건축가 요셉 호프만에게 자신의 집을 꾸며달라고 부탁하는 등 예술에 대한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림 속 그녀가 입은 의상 역시 빈 공방에서 만든 옷이다. 이 시기에 클림트는 소냐 크닙스를 표현할 때 많은 색을 쓰기보다는 단아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그녀가 들고 있는 붉은 책에만 포인트를 두었다. 신기한 것은 이 작품의 형태가 지금의 인스타그램 사이즈처럼 정사각형이라는 것이다. 클림트는 미래를 내다본 듯하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SNS로 올리기 위해 1:1비율인 정사각형 형태로 찍고 있으니 말이다.

에밀리 플뢰게를 그리다

이 작품은 평생 동안 클림트를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 친구였던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이다(사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반려자로 지냈다). 플뢰게는 당시 비엔나에서 파울리네와 헬레네라는 자매와 함께 의상실을 운영했다. 그녀는 몸에 딱 붙는 드레스가 아닌 몸을 감싸는 양탄자 같은 흘러내리는 드레스를 디자인했고, 드레스의 문양 역시 당대에는 새로웠던 넝쿨 문양과 추상적인 도형으로 가득하며 인물과 의상과 배경은 하나의 풍경처럼 합일을 이룬다. 당시 클림트의 초상화가 인기가 많았던 이유 역시 의상을 표현해 내는 장식성도 한몫했다. 클림트는 플뢰게와 함께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할 정도로 회화 이외에 의상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정기적으로 아터제 호수에서 함께 휴가를 보냈고 4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을 정도로 내밀한 사이였다. 그래서일까? 화면 속 에밀리 플뢰게는 마치 너무나도 편안한 눈빛으로 화가인 클림트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자신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을 쳐다보는 듯이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소냐 크닙스, 1898, 캔버스에 유채, 145×145cm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리 플뢰게, 1902,
캔버스에 유채, 178×80cm

금빛 화가, 클림트

‘황금색을 사랑한 화가’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클림트를 대표하는 금빛이 가득한 초상화다. 실제 클림트는 금은세공사 부모님을 둔 덕에 금빛을 표현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클림트가 그린 초상화 중 가장 많은 양의 금빛이 사용되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성공한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의 아내로 부부는 모두 유대인이었다. 문화 예술을 사랑했던 부부의 집에는 클림트 이외에도 브람스, 말러 등 빈의 주요 문화계 인사들이 방문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불렀다. 아델레의 몸 전체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방이 온통 황금빛에 파묻혀 무언가 골몰히 사유하는 여신처럼 보인다. 종전 직후 페르디난트는 세상을 떠나며 그림의 소유권을 조카들에게 넘겼는데 안타깝게도 나치는 이 부부가 소장했던 그림들을 전부 몰수해갔기에 다시 오스트리아 정부로 그림이 돌아왔다. 조카 중 한 명인 알트만은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그림을 되찾았는데 이 이야기는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로도 세상에 알려졌다.

생전에 자신에 대한 기록이나 자화상을 남기지 않던 클림트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자신의 그림을 주의 깊게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초상화 속 여인들의 눈동자에는 그녀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클림트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의 초상화는 여전히 우리가 세기말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는 깊고 화려한 통로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907, 캔버스에 유채와 금, 140×140cm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소통하는 그림연구소, 조이뮤지엄 대표. <그림은 위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처음 만나는 아트 컬렉팅>,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