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 그래서,
한국판 뉴딜이 뭔데?

‘한국판 뉴딜’은 현재 환경문제와 미래신사업, 경제 분야에 있어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우리는 그 뜻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 미국이 대공황 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제반 정책의 이름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한국판 그린 뉴딜에 이르기까지.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본다.

글 박병률(주간경향 폅집장)


미국이 대공황 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정책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대폭락으로 경제불황이 시작되었다. 경제상황 악화로 금융시장에 위기감이 조성되면서 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 상태를 우려한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와 기업의 연쇄 파산이 이어졌다. 3년 뒤 1932년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1929년의 56%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으며, 그 결과 1,300만 명의 실업자가 생겨났다. 이러한 최악의 경제 상황은 정권교체로 이어져 대선에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당선됐다. 그는 유례없는 대공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존의 대책을 답습할 수 없었다.
이때 꺼낸 것이 바로 ‘뉴딜(New Deal: 새 정책)’이다. 묵은 경제체질은 바꾸고 일자리를 마련함으로 빈궁과 불안에 떠는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 과감하게 재정을 퍼붓기로 했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최저임금, 연금 등 미국 노동자의 노동권과 복지 체계는 이때 대폭 강화됐다. 다리, 도로, 댐 등을 건설하거나 지으면서 성장을 위한 인프라가 마련됐다. 당시 뉴딜 정책은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함에 따라 자유주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뉴딜로 여는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 그리고 2020년, 유례없는 전염병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다. 이로 인해 한때 코스피는 반토막이 났고, 환율은 치솟았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외출이 줄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은 대거 문을 닫았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실직자가 쏟아졌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대책이 필요했다. 실업자는 줄이면서 경제체질은 바꿀 묘안 말이다.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이 ‘한국판 뉴딜’이다. 한국판 뉴딜은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는 공격적인 의지가 녹아있다.
사실 ‘한국판 뉴딜’이라는 명칭은 꽤 거창하게 들린다. 명칭의 무게를 빼고 정리해보자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쓸 텐데, 기왕이면 우리 경제체질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곳에 쓰겠다’로 요약할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라고 생각해도 기존의 기득권 단체의 반발을 넘기 힘들기 때문에 진행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생각하면 과감해야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함께 극복하지 않으면 모두 낙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그동안 미뤘던 개혁적 조치나 과감한 투자를 수행할 여지가 커진다. 우리에게는 디지털, 그린, 사회안전망이 그런 분야다.

한국판 뉴딜의 시작 올해 7월 정부는 한국판 뉴딜 2.0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발표했던 한국판 뉴딜을 업그레이드 한 버전이다. 한국판 뉴딜 2.0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휴먼뉴딜’ 등 3대축으로 진행된다. 2025년까지 투입되는 돈은 총 2,200조 원. 이를 이용해 2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골격이다. 디지털 뉴딜은 말 그대로 디지털 분야의 투자이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는 초고속 통신망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갖게 됐고, 이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및 게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 기회가 됐다. 이번 디지털 뉴딜은 빅데이터, 5G, AI 부분을 겨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교육인프라를 디지털로 전환하고,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교통·수자원·도시·물류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디지털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활용하는 메타버스 관련 신산업육성책도 한국판 뉴딜 2.0에 새롭게 포함됐다. 디지털 뉴딜은 그간 우리가 집중해오던 분야이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분야라 큰 이견이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은 탄소중립(Net-zero)사회를 지향하는 ‘그린 뉴딜’이다. 가장 많은 61조 원이 투입된다. 그린 뉴딜은 과감한 녹색전환을 통해 우리가 그린 분야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혁신적인 녹색산업을 키워 기업의 경쟁력을 높임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기후와 환경논의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환경문제는 더이상 도덕적 정의 차원으로 논의되지 않는다. 이제는 기업 및 국가의 경쟁력과 직접 연결된다. 기존 산업을 고려해 뒤로 미룰수록 경쟁에서 도태된다. 최근 경영계의 최대 화두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SG 중에서도 핵심은 E(환경)로 꼽는다.

그린 뉴딜이 제시하는 과제 한국판 뉴딜 2.0에서 새롭게 포함된 부분은 ‘탄소중립 추진 기반’ 구축이다. 2030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이행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산업계의 탄소감축 체제를 구축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한국은 2030년 탄소배출을 2017년 대비 24.4% 줄여야 한다. 그린 뉴딜과 관련된 과제로는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가 있다. 그린 리모델링은 공공시설을 제로 에너지화로 전환해 에너지를 고효율로 사용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오래된 건축물에 태양광을 설치하거나 고성능 단열재로 교체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그린 에너지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는 전기나 수소를 이용한 이동수단을 확대하는 것을 담고 있다. 특히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수소차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한난 또한 태양열, 지열, 바이오가스 등 열병합발전 및 지역난방 네크워크와 연계한 신재생에너지 연구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그린 뉴딜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탄소국경세는 일종의 관세로 철강, 시멘트, 비료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단계적으로 확대 부과할 예정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현 상태대로라면 우리나라가 EU,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2030년 기준 1조 8700억 원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비용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탄소소비량이 많으면 수출 자체가 금지될 수 있다. 최근 국내 한 수출업체는 스웨덴 바이어로부터 제품생산 전 과정에 걸쳐 나오는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바이어는 이 정보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품 수입을 하지 않겠다 통보했다. 탄소배출량 정보에는 제품생산에 사용된 전기의 탄소배출량도 포함된다. 화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썼다면 제품의 탄소배출량도 대폭 증가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문제, 그린규제 과거에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카 생산만으로도 그린규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제아무리 탄소배출 제로의 전기차를 만들어도 전기차를 만드는데 탄소를 많이 발생시켰다면 판매할 수 없다. 그린 대책이 기업 차원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과 접목되면 그린 뉴딜은 더 탄력을 받는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친환경 제조공정을 갖춘 스마트 그린 산단은 디지털과 그린의 협업이 필요한 분야다.
명칭만 다르지 그린 산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속도를 높이는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월 20일 취임 이후 첫 번째로 서명한 행정명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그중 5개가 환경 관련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2년간 2조 달러(2200조 원)를 환경산업에 투자한다. 우리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4년간 쓰기로 한 전체 예산(160조 원)의 13배다. 바이든 행정부는 환경규제와 첨단환경기술력을 앞세워 다시 한번 글로벌 제조업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만약 재생에너지 생산 비중이 작을 경우 우리나라 전기 배터리업체는 미국으로 공장을 옮길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사용 규제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판 뉴딜은 더 과감하고 강력한 투자 계획이 나올 수도 있다. 해외 기관은 물론이고 국내 연기금들도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은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해부터 화석연료 매출이 25% 넘는 기업은 투자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한 JP모건은 산림파괴와 북극 개발 등에 연루된 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를 발표했다. 국민연금도 지난해 12.2%였던 ESG 투자자산 비중을 내년까지 5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BNK경제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ESG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밝혔다. 이 말은 한국판 뉴딜에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판 뉴딜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